나는 일할 때 투덜대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싫다’라는 말조차 부정적인 기운이 커서
잘 쓰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이렇게 고쳐본다.
부정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사람을
나는 반기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창업하고 사업을 시작했을 때부터였을까?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때 이미 그 씨앗이 있었다.
친구들이 “월급이 이만큼이면 좋겠다”,
“연봉이 얼마면 좋겠다” 하고 말을 꺼내면,
나는 늘 한마디를 보탰다.
“한 달에 1억 정도는 벌어야 하는 거 아냐?”
그때는 재료비도, 인건비도, 세금도 계산하지 않았다.
단순히 500원짜리 볼펜 20만 개만 팔면
한 달에 1억이라는 셈법이었으니까.
친구들은 “말도 안 돼”라며 손사래를 쳤고,
나는 “왜 안 돼?” 하고 맞받아쳤다.
결국 다툼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안 된다”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반발했고,
무언가를 되게 만드는 과정에 매혹됐다.
늘 새로운 걸 시도했고,
늘 ‘안 된다’는 목소리와 부딪쳤다.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부딪혀서 얻을 게 많지 않다는 걸 배웠다.
그래서 웬만하면 수긍하고 인정하려 한다.
그래도 마음 한구석은 묻는다.
“이렇게까지 싸우지 않아도 되는 게 맞을까?”
⸻
나는 다음과 같이 생각을 정리했다
1. 불만을 ‘정보’로 듣기
투덜대는 말도 가만히 들으면 나름의 데이터가 있다. 일정이 무리하거나,
자원이 부족하거나,
혹은 단순히 상대방이 피로한 것일 수도 있다.
예전 같으면 “왜 안 돼?”라고 되받아쳤겠지만,
이제는 “어떤 부분이 힘들어?”라고 묻는다.
불만을 문제 탐지 센서로 쓰는 법을 배운 셈이다.
2. ‘가능한 범위’를 함께 좁혀 보기
내가 생각하는 가능성의 크기와
상대가 느끼는 현실의 벽은 다르다.
그래서 먼저 서로의 범위를 그려 본다.
거기서 겹치는 지점을 찾아내면
의외로 일을 굴릴 최소 단위가 보인다.
그걸 기준으로 조금씩 넓혀 나가면,
‘안 된다’가 ‘어, 되네?’로 바뀌는 순간이 온다.
3. 감정은 말보다 빠르다
갈등 중엔 논리보다 감정이 앞선다.
예전의 나는 논리로 설득하려다
감정을 건드려 일을 망친 적이 많았다.
이제는 일단 감정을 인정한다.
“그럴 수 있겠다” 한마디면,
상대는 방패를 내려놓는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논리가 통한다.
⸻
아직도 고민은 남는다
“끝까지 밀어붙여야 할 때와
받아들여야 할 때를 어떻게 구분할까?”
나는 여전히 답을 찾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된다”는 믿음과 “안 된다”는
현실 사이엔 늘 긴장이 있고,
그 긴장이야말로 창조적 에너지라는 사실이다.
- 너무 쉽게 포기하면 기회가 사라진다.
- 무작정 밀어붙이면 사람을 잃는다.
그래서 오늘도 무게추를 이리저리 옮겨 본다.
언젠가 완벽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아마 끝까지 못 찾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성장하고,
프로젝트는 조금씩 앞으로 굴러간다.
그리고 언젠가 또 누군가가
내게 “그건 안 돼”라고 말할 것이다.
그때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안 되면 되게 하자. 다만, 같이 생각해 보자.”
결국 내가 진짜 싫어했던 건
‘투덜거림’이 아니라 관성에 기대어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묻는다.
정말 안 되는 걸까?
아니면 아직 안 된 걸까?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추가한다.
“아직이라면, 같이 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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